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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재밌는 에피소드

군기교육대 - 전의경 기율교육대 3번을 가다

by 나벤져스 2020.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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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저는 군생활을 전투경찰로 했습니다. 이미 전경이라는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현재에는

의경(의무경찰)만 남아 있다고 하네요. 전투경찰 출신이라 전경이 없어졌다고 하니 조금 아쉽지만

국가적인 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2000년 대 거의 초반에 전경 생활을 했는데 당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기율교육대의 경험이 아닐까 합니다. 

 

 

전투경찰과 의무경찰의 성지 - 기율교육대 

 

당시 전의경 사이에서 기율교육대는 악명이 높았던.. 누구도 가고 싶지 않아 했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 기율교육대를 제가 3번이나 가게 된 사연이 있지만....

너무 글이 길어지니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요즘도 군기교육대나 기율교육대가 있는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예전에 제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에

전의경의 경우에는 기율교육대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육군이 군기교육대라고 하면 전의경은

기율교육대라는 조금 다른 이름을 사용했을 뿐 아마 같은 개념의 장소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은 전투경찰 제도는 폐지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육군에 입대하고 전투경찰로

배정받았던 시기는 2000년 거의 초반이었고 당시에는 육군 훈련소에서 상당 인원을 그냥

랜덤으로 전투경찰로 빼서 다시 충주에 있는 경찰학교로 훈련을 보냈던 시절입니다. 

 

사실 뭐 군대에서 영창 가고 군기교육대나 기율교육대(소위 기율대)를 다녀온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율대를 무려 3번이나 다녀온 저에게는 지금 생각하면 참 재밌는? 경험이었고

나름 기율대 훈련을 통해서 느낀 점도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군대에서 영창이나 군기교육대를 다녀오면 무슨 쓰레기?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군대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소한

이유로도 영창이나 기율대 같은 곳을 보내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사소하다는 개념은

그냥 사회 통념적인 측면이고 군법은 좀 특수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방범 근무 시간에 몰래 어묵을 먹다 걸리거나 근무 시간에 졸다가 걸려서

군기교육대를 가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사실 영창은 2번을 갔었지만 기율교육대는 3번을 가야 했습니다. 사실 중대 범죄자도 아니고

영창을 3번 보내는 것은 좀 가혹하다고 당시 중대장님이 판단을 했고 그래도 기율교육대는

1번을 더 다녀오라고 해서 결국 총 3번이나 기율교육대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전경의 신분이었기에 일반 육군 군기교육대가 아닌 당시 충주에 경찰학교에 있는

기율교육대라는 곳을 갔었습니다. 교육 기간은 2주 였고, 육군 훈련소와 같이 입소 및 퇴소식을

치르는 일종의 훈련 기간? 그런 개념이었습니다. 

 

 

당시 기율교육대 위치

 

충주 중앙경찰학교 - 적보산 

정확히 말하면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적보산

 

출처: 위키백과 - 중앙경찰학교

 

경찰학교 맨 꼭대기였는지 아무튼 경찰학교 내부에 좀 외진 곳에 기율교육대가 있었다고

기억을 합니다. 기율교육대 입구 앞에는 바리케이드에 빨간 팻말로 "출입금지"라는 말이

써있는었지 아무튼 뭐라고 쓰여있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1. 훈련 강도

 

사실 영화 실미도 같다고 하면 그건 좀 과장이지만 일반 육군 훈련소에서 받았던 육체적 고통이나

힘든 정도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뭐 생각을 해보면 이미 자대 배치를 받고 군 복무를 하는

병사가 사고를 쳐서 기율교육대에 가는 것이기에 당연히 훈련이 좀 힘들다는 것은 예상이 가능합니다.

일반 육군 유격훈련이나 특수 부대의 여러 특수 훈련 등을 받아본 경험은 없기에 비교 자체는 어렵지만

기율대 분위기 특성상 정신적인 압박감과 좀 터무니없는 기합(얼차려)등은 아마 어디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수준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뭐 물론 더 과거로 거슬러가서 70~80년 대 시절에는

훨씬 더 했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2. 훈련 종류

 

무려 3번을 다녀왔지만 워낙 세월이 많이 지나고 사실 그렇게 행복? 한 추억은 아니기에 일부러

기억을 하거나 기록을 해두지는 않아서 100% 모든 디테일이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전의경 부대에서는 하지 않는 몇 가지 훈련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가장 생각이 나는 훈련은

목봉 체조입니다. 여러 명이 일렬로 서서 허리 두께 정도가 되는 긴 목봉을 어깨에 메고 일종의

체조를 하는 것입니다. 목봉 체조의 가장 강렬한 기억은 목봉을 어깨에 올리고 앉은 걸음으로

산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오리걸음은 그냥 평지에서 좀 오래 하면 온몸이 다 쑤시는데

무거운 목봉을 어깨에 걸치고 오리걸음으로 오르막을 가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들었습니다.

 

대모를 막는 진압 부대에서 진압 훈련을 주로 받다가 목봉 체조, 타이어 매고 뛰기 등 다양한

훈련을 처음 받다 보니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진압 훈련도 몸이 편한 훈련은

아니지만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의 정도는 기율교육대와는 비할 바는 아니라고 몸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육군 훈련소에서 조금 맛을 봤었던 PT체조도 훈련 중간에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 시도 때도 없는 얼차려 

 

기율교육대에서는 정규 훈련 및 교육 시간 외에도 하루에도 수십수백 차례의 얼차려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식사를 하다가도 그냥 장소 이동을 하는 중간이나 취침 직전, 혹은 단체 샤워 시간 등

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차려가 찾아왔습니다. 얼차려의 강도도 육군 훈련소나 자대에서는

받지 못해 봤던 수준이었고 대가리 박아가 아닌 대가리 뒤로 박아와 같은 좀 더 신체에 고통과

압박이 느껴지는 얼차려가 많았습니다. 사실 이 얼차려가 없었다면 아마 전체적으로 신체적인

힘듬은 훨씬 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얼차려가 빠지면 섭섭하겠죠?

 

4. 특수한 제식 동작과 군가 제창

 

기율교육대를 가면 당시에 가장 먼저 새로 배우는 동작이 바로 기율교육대만의 특수 제식입니다.

말이나 글로 설명을 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쉽게 말해, 몸을 더 힘들게 하기 위해 동작을 좀 더

과장? 되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단체로 이동을 하다가 제자리에 서는 동작도 양팔을 90도로 

만들고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데, 이때 무릎이 허리 높이 이상으로 올라와야 하며 이런 동작을

1~2분 계속하다가 제자리에 섭니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 기율 교육대 훈련생 40명 정도가

이 동작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 무슨 특수 부대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당시에 실제로 경찰학교에선

기율교육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경찰 관련 특수 부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징은 군가를 부르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역시 말로 설명을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 끊어 부르는 방식입니다. 한국어 한 글자 

한 글자를 딱딱 절도 있게 끊어 부르기에 30~40명 인원이 단체로 이렇게 군가를 부르면서 뛰면

좀 나름 포스를 풍기기는 합니다. 단, 기율교육대에 입소하고 3일 이내에 모든 교육생의 목이

쉬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유는 바로 독특한 군가 제창의 방식에 있습니다.

 

5. 식사와 수분 섭취 

 

식사는 상당히 잘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기반찬도 많았고 전체적으로 식단 자체가

영양 밸런스도 좋았던 것으로 생각이 납니다. 가끔 밤에 야식을 줬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몸을 계속 혹사시키려면 잘 먹여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물을 잘 주지 않았습니다. 정규 훈련 과정에서도 제 기억으로는 대부분 시간에

물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종의 훈련의 일부라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것도 힘이 들었던 이유의 하나가 아니었나 합니다.

 

 

6. 기타 특이사항

 

이름이 없습니다. 모든 교육생은 번호로 불리고 몇 번 교육생이라고 하면 대답합니다.

교도소에 죄수 번호가 있듯이 뭐 그렇게 이해하면 쉽습니다. 이름이 없으니 계급도 없습니다.

당시 여러 지역에 복무하는 전의경이 모이는 곳이니 사실 서로 다 아저씨 아저씨지...

자대 내의 선임과 후임 개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간부 외에 조교들도 일반 전의경 사병이었는데

이 조교들도 이름과 계급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끔 조교한테 불만을 품고 나중에

해꼬지 하는 경우가 발생할까 봐 조교의 신분도 최대한 감추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교들 군화에 쇠링과 같은 장치를 해서 걸을 때 소리가 납니다. 당시에는 그 소리가

정말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일반 육군 훈련소보다 조교가 조금 살벌합니다. 

솔직히 대놓고 구타를 하는 행위는 딱히 없었지만 욕설은 항상 난무했습니다. 요즘 군대에서는

그러면 큰일 난다고 들은 것 같지만 당시 기율교육대에서 욕은 일상이었다고 기억이 나네요.

 


 

기율교육대를 3번을 다녀오면서...

 

사실 진압 부대에서 복무 당시에는 저도 훨씬 젊고 기본적인 진압 훈련을 받으니 일반적으로

다른 군인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기본 체력은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기율교육대를 3번 다녀오고

가장 큰 변화는 기율교육대 이전에는 중대 체육대회에서 중대 전체 인원 오래 달리기에서 30~40위

수준이었는데 기율교육대를 3번 다녀온 이후에는 제대 전까지 항상 1등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대 전체 인원인 150명이 넘었었습니다. 확실히 체력, 특히 지구력이 향상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원래 살찐 체형은 아니었는데 처음 기율교육대 훈련 이후에 5kg 이상 체중이 

줄었습니다. 기율교육대 3회를 7개월이 안 되는 기간에 몰아서 갔었는데(사고를 친 기간이 그렇다 보니..)

처음 갔을 때 특히 체중이 많이 줄었습니다. 물론 15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그냥 살이 쪄서

당시에 그런 체중이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다이어트에는 정말 직빵이 아닐까 합니다. 

 

단순한 체력 증진과 체중 감량 경험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일종의 "악", "깡" 이런 느낌이 생긴다는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독이 오른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아무튼 제 개인적인 인생사에서는

신체적으로는 가장 고된 시간을 보냈던 곳이 기율교육대 3회 경험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힘든 훈련을 많이 받아본 경험자가 보면 우습게 들릴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사람은 본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나무 위키에서 기율교육대를 대충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은 제 기억이 틀린 건지

딱히 앉아서 편하게 영상을 봤던 기억은 나지가... 않는데 나무 위키에서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뭐 전투경찰도 폐지가 된 지 꽤 지났으니 나중에 기율교육대 교육 과정에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3번을 갔을 당시에는 정말 미치도록 얼차려를 받고 계속 뛰고 육체적 훈련을 

받았던 기억만 있습니다. ㅎㅎ 

 

전투경찰은 이미 오래전에 폐지가 되었고 이젠 의무경찰만 남았는데요. 그래도 예전에 전경이나 

의경으로 군생활을 했던 사람은 누구나 기율교육대를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율대를

3번이나 가면서 갈 때마다 항상 다른 교육 동기생을 만났으니 대한민국에 저 외에도 기율대를

경험한 추억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남성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물론 다시는 갈 수도 없고 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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